작성자 : 구절암   |   열람수 : 994   |   작성일 : 18-08-30 19:16

한 20 세기 고려 시대가되면 수업과 선이 서로 발달했다. 화엄 사상에서는 均如 (1923 ~ 1973 년)가 나와 의의 湘以오고의 화엄종을 대성했다. 또한 천태 학은 체념 (한 20 세기)가 나왔다. 그는 당나라 말 오대의 전란에 의해 중국에서 잃어버린 천대 전적을 중국에 가져 송나라의 천태종이 부활하는 기반을 제공했다.

비슷한 것은 약 한 〇〇 년 후 의천 (한 1905 오 ~ 한 1 백 일년)도 볼 수있다. 의천은 화엄종의 전적을 제공하고 송나라의 화엄종의 부활에 크게 기여했다. 이 밖에 의천의 공적으로는 고려 대장경의 속 장경을 편찬 한 것을들 수있다. 이시기 중국을 중심으로 대장경이 편찬되었는데 고려도 고려 대장경의 편찬이 이루어졌다. 기존의 대장경이 인도에서 성립 된 거쳐 율법, 이론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반면 의천은 중국, 조선 찬술의 전적을 집성 한 대장경을 편찬 한 것이다. 또한 선에서 열세 세기에 知訥 (한 열 다섯 여덟 ~ 한두 한 120 년)가 나왔다. 그는 중국 李通玄의 화엄 사상과 대혜 종고의 선 사상 (看話禅)을 도입하고 독특한 이론을 형성했다.

열세 92 년에 시작 (이씨) 조선 시대에는 지금까지의 불교 중심에서 유교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국가 체제로 변화했다. 따라서 불교는 배척되고 많은 사원이 파괴 됐고 종파도 통합되어 최종적으로는 선종과 教宗의 둘만 남았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열 여섯 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서산 대사 休静 (열 다섯 스물 ~ 1607 사년)가 승병을 조직하여 저항 운동을 실시했으며, 불교 사상에 있어서도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1910 년 한국 병합에 의해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가되어 세들과 계속되고 있던 조선 불교 일본의 영향을 입게되었다. 일본 조동종과 임제종 의한 조선 불교의 통합이나 편입이 기획 된 적도 있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에 의해 한반도의 사원도 일본과 비슷한 본사 말사 제가 도입되는 등 제도면에서 큰 영향을 받고 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유부남 승려가 출현하고 계율의 전통이 잃어버린 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