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구절암   |   열람수 : 861   |   작성일 : 18-08-04 19:06

그리고 무엇보다 간다라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이 땅에서 만들어진 불상 것이다. 붓다의 입멸 후 오랫동안 그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로되어 있었다. 따라서 도상에서 붓다가 있어야 할 위치에는 그것을 암시하는 仏座과 傘蓋 상징적으로 보리수와 파룬궁 등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쿠샨 제국 시대에 들어 간다라 미술이 번성하면 인간의 모습을 취한 부처가 표현되게되었다. 이런 불상은 그리스 · 로마 계 미술의 강한 영향하에 만들어져있어 사실적인 작풍을 특징으로하고있다. 한편, 간다라와 거의 같은시기에 인도의 마투라 (현재 델리의 남동 도시)에서도 활발히 불상이 만들어졌다. 이곳은 간다라 미술와는 대조적으로, 동상 땅딸막 한 형태 등 인도 고유의 전통 기법을 기반으로 순수 인도적인 작풍을 특징으로하고있다.

간다라 미술 및 마투라 미술은 양식도 크게 다르며 직접적인 영향 관계 등은 인정할 수 없다고한다. 따라서 수년에 걸쳐, 양자의 선후 관계를 둘러싼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결론은 붙어 있지 않다. 다만 두 지역이 쿠샨 제국의 양대 근거지 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한때 매우 번성했던 간다라 불교 였지만, 3 세기 중반부터 급격히 쇠퇴 해 갔다. 일본에서 '삼장법사'의 존칭으로 사랑 받고있는 玄奘도 인도로가는 여행 도중이 간다라를 다닌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 무렵의 간다라에는 옛 모습이 아니라 3000 곳에수록했다 불교 사원은 완전히 썩어 있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