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구절암   |   열람수 : 916   |   작성일 : 18-10-05 17:44
일본 불교사 - 헤이안 시대
헤이안 시대에는 불교는 밀교가 중심이되었습니다. 밀교는 인도 힌두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성립 한 불교에서 현실 긍정을 배경으로 지금 살아있는 단계에서 성불 할 수 있다는 即身成仏 (촉진 응 성불)의 사상을 크게 주장합니다. 일본에서는이 현실 긍정의 사상은 일반인도 부처가 될 수 같다는 불성 론과 함께 점점 더 강조되고 院政기에는 이미 중생이 부처 있다는 本覚 사상 (단지 꽃받침 할 것)로 발전합니다.

일본의 밀교는 크게 천태종 계의 台密과 진언종 계의 東密 (당밀)의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천태종과 진언종은 헤이안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천태종을 연 것은 최징 (최징)입니다. 최징은 천태종을 배우기 위하여 당나라에 건너가 그곳에서 천대 외에 밀교, 선, 계율을 배웠습니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 히에이 잔 (히에이)에 엔랴 쿠지 (엔랴 쿠지)를 건립 천태종을 열었습니다. 최징은 또한 기존의 엄격한 제한적인 소승 계에 대해보다 덜 제한적인 세상을위한 대승 계를 중시하고 그것을 수여 계단을 히에이 잔에 설치하도록 조정에 제의했습니다. 이 대승 계에 의한 계단의 설립이 인정 된 것은 최징의 사후 곧입니다.

진언종을 열었다 공해 (공해) 또한 최징과 마찬가지로 당나라에 건너 밀교를 배우고 돌아와에서 고야산에 곤고 부지 (금강 봉사)을 교토에 도지 (도지)를 세웠습니다. 공해 배운 밀교는 일본 불교 세계에 큰 영향을주고 귀족과 승려들이 밀교를 배우러 온다. 먼저 천태종을 열었다 최징 역시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렇게 공해가 전한 밀교가 이후의 헤이안 시대의 불교의 중심이되어갔습니다.

천태종에서는 최징 후 엔닌 (엔닌) 円珍 (円珍)이 당나라에 밀교를 배우고갑니다. 엔닌은 또한 염불도 전했습니다. 다른 사상을 포괄하는 천태의 사상을 받아 히에이는 천태종의 다른 밀교 정토 불교, 선 등도 배울 종합 대학으로 활약합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정토종과 니치렌 종을 탄생하지만 그 창시자들도 처음에는 히에이에서 배우고, 후에 독립 한 사람들입니다.

밀교에서는 카지기도 (고서 기통)가 이루어집니다. 그 주술적인 힘을 이용하여 현세 이익을 성취하는 것이기도하지만 귀족을 중심으로 받아 들여졌다. 나라 시대의 불교가 조정에 의한 진호 국가와 학문을 중심으로하는 불교였다 반면, 헤이안 시대의 불교는 현세 이익을 중심으로 한 귀족 불교였습니다. 그 후,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구원을 전파 가마쿠라 불교의 시대로 이행합니다.

헤이안 시대 중반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에 걸쳐 재해가 다발했습니다. 또한 귀족 사회에서 무가 사회로 이행 거듭되는 전란도 일어나게 사회 불안이 커졌습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사후에 점점 불교가 사라져가는 말법 사상 (말법 할 것)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불안이 증가함에 따라 即身成仏 같은 현세에서의 성불과 구원을 포기하고 내세에 극락에 왕생하여 성불하는 정토 사상이 보급되어갔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생 요 집 (왕성 葉舟) "를 쓴 源信 (원심)가 있습니다. 지금의 정토종과 정토는 염불은 "나무 아미타불"이라고 주장 것만을 의미하지만, 源信 시대에는 아미타불을 마음에 그리다 염불도 説か됩니다.